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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우크라이나, 러시아 위기의 역사적 배경

by bitdigger1 2022. 2. 24.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본격적인 침공을 명령하면서 국제적인 위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구 소련 붕괴 후 독립했던 우크라이나는 국가 존립의 위기 속에 놓이고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러시아의 물러서지 않는 태도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동서양 사이의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수세기에 걸친 유혈 사태와 반복적인 외국의 지배, 내부 분열로 인해 고통받아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역사적, 종교적, 지역적인 반목과 치명적인 갈등의 역사적 배경을 정리해봅니다.

키예프 공국의 문장

서기 882년에 키예프를 중심으로 최초의 슬라브 국가, 키예프 공국(Kievan Rus)이 형성됩니다.
키예프 공국에서 갈라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키예프를 슬라브 민족의 발상지로 동시에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푸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민족이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10세기 동안 키예프 루스는 비옥한 옥토를 노린 외부 세력에 의해 반복적으로 침략당하기 시작합니다.
13세기 몽고에게 정복당하고 16세기에 들어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군대의 침략을 받게 됩니다.
17세기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러시아 짜르 왕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드네프르 강을 중심으로 동쪽 지역이 러시아 제국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고 드네프르 강 서쪽 지역은 우크라이나로 알려지며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00년 후, 1793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면서 고유 언어의 사용이 금지되고 러시아 정교로의 개종이 강요되면서 민족적인 특징을 말살하는 러시아화 정책이 실시되면서 탄압받기 시작합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생긴 공백 속에 독립을 쟁취하는 듯했지만 정권 수립을 위해 내전을 벌이다 혁명을 완수하고 세력 확장을 시작한 소련이 비옥한 곡창지대와 풍부한 지하자원, 흑해의 부동항을 노리며 침공하면서 1922년 동부 지역이 다시 소련 연방에 흡수되면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1930년대 초, 집단 농장 정책의 실패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사망하는 대기근이 발생하며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스탈린은 러시아인들의 대규모 이주를 지시하면서 이후 벌어지는 내부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됩니다.
소련은 특히 석탄 지대에 공업화를 시행하면서 엄청난 산업화를 이루어내면서 산업지대로 변모시킵니다.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폴란드의 지배를 받던 서부 우크라이나가 독소 불가침 조약으로 소련에 편입되지만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독일군과 소련군으로 참전한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특히 독일 측에 부역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유태인에 대한 대학살을 벌이며 역사에 오점을 남깁니다.

1991년 소련 연방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얻지만 내부적 갈등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동부는 러시아 계의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러시아 정교가 지배적인 종교인 반면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서부 지역은 가톨릭을 믿으며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면서 오래된 지역 갈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거기에 공산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으며, 특히 동부 지역의 많은 러시아 계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전 시대의 상대적 안정을 원하게 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동부 지역은 친러 정당에게 94%가 넘는 지지표를 몰아 주며 극명한 정치적 차이를 보여줍니다.

2004년 유럽과의 통합을 원하는 세력들이 친러 정부의 대선 부정투표에 대항하여 벌어진 오렌지 혁명은 이 두 세력 간의 갈등이 극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혁명 이후 친서방 정부가 들어섰지만 내부 갈등은 여전했고 나토 가입을 추진하던 친서방 정부가 2010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친러 정부가 다시 들어서지만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는 우크라이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립니다.

경제 회생을 위해 러시아의 재정지원과 서방세계의 자금 지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당시 정부는 러시아를 선택했고 러시아에 경제가 종속되는 걸 반대하는 시민들의 불만은 증폭되어 갑니다.
결국 2013년 EU와 나토 가입을 원하며 친러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키예프에서 유로마이단 시위를 벌이면서 유혈 투쟁 끝에 시민 혁명을 성공시켜 친러 정부를 몰아내고 친서방 과도정부를 수립하지만 이에 반발한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의 친러계 주민들이 2014년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무장 투쟁을 시작하면서 내전 상태가 됩니다.
결국 크림반도는 서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편입되었고 돈바스 지역에서는 분리주의 세력이 루한스크 인민 공화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을 선언하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정부군과 전선을 형성하고 전투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역사적으로 키예프 공국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영토 일부로 생각하며 친서방 정책을 추구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으로 자신의 턱밑에 서방 세력의 전진 기지를 두고 싶지 않았던 러시아는 2022년 2월 동부 지역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푸틴의 공식 명령으로 침공을 공식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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